징후 혹은 증후로서의 장소와 사진에 대하여 | 안종현 작가론
월간미술 2020년 9월호에 수록. 종현의 전시를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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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후 혹은 증후로서의 장소와 사진에 대하여 | 안종현 작가론
김현주 (독립큐레이터)
안종현의 《당신으로부터 나의 거리》는 2020년 일우사진상 전시부문 수상작가전을 위한 신작 〈멀리 가까이 중간〉을 이루는 세 갈래인 DMZ, 주한미군기지, 정신병원 연작과 2019년 《시작의 불》에서 발표한 전소된 공장지대, 불탄 숲을 두 공간에 나누어 배치하고 있다. 〈멀리 가까이 중간〉을 세 파트의 연작 대신 세 갈래라고 굳이 부른 이유는 DMZ, 주한미군기지, 정신병원만의 정합성을 구상해 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장소 선택에 작가만의 심리적 근거는 물론 있겠지만 갈래로서 열어두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멀리 가까이 중간〉은 주 전시장 입구 주변에 걸린 〈멀리 가까이 중간_DMZ〉에서 시작해서 가벽 분할을 통해 이어지는 〈멀리 가까이 중간_U.S. army base〉, 그리고 가장 내부에 자리한 〈멀리 가까이 중간_psychiatric hospital〉 연작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서너 차례 전시장을 둘러보는 과정에서도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는 작품은 〈멀리 가까이 중간_psychiatric hospital-#01〉이다. 이 작품은 사각의 전시장 입구와는 대각선 가장 먼 곳에, 동선 상 시각장에서는 가벽으로 가려진 곳에 자리한다. 셔츠 자락을 두 손으로 열어젖힌 가슴팍이 가림막 상에서는 통로가 되어 그 너머를 잇고 있는, 실로 무지막지한 이미지로 고대에 제욱시스도 열지 못한 파라시오스의 커튼이 오늘날 한국 땅에서 무자비하게 열어 젖혀진 국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복기해보면 단서는 있었다. 이 작품에 다가서기 이전에 〈멀리 가까이 중간_psychiatric hospital-#10〉과 〈멀리 가까이 중간_psychiatric hospital-#11〉에 드리워진 베일이 전조인데 이 작품들을 심미적으로만 보고서 쉽사리 지나쳐 버린 것이다.
작업을 “현실로부터 분리된 현실”을 시각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는 안종현에게 〈멀리 가까이 중간_psychiatric hospital-#01〉은 특수한 예외로 보이는데 내겐 이 작품이 시각화의 과정이라기보다는 특수하게 “현실로부터 분리된 현실” 그 결정체로 다가온다. 이전까지의 안종현의 작업에서 나는 주관적으로 ‘예쁨’을 찾아내곤 했는데 《시작의 불》의 〈Factory #01〉이 화재를 뭉뚱그려 드러내는 대신 화재의 규모를 수평적 레벨 차를 두어 사건의 규모를 가늠케 하는 위치 판단에서 오는 작가적 프레임을 보여주거나 〈Factory #03〉에서 공장 지붕 전소 동안 화력에 견디지 못해 휘어버린 물성에 섬유의 주름짐을 대비시키게끔 하는 미장센이 그 예이다. 《미래의 땅》에서 중석광산 폐광의 지대를 관념의 검댕이 아닌 창백한 백색조로 제시하는 면모나 《풍경》 연작에서 일반 비율을 훌쩍 상회해 사진 가득 들어찬 나무의 이미지는 어떤 쾌를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냉철한 계산도 있겠지만 작가로서의 감각적 혹은 더 극단적으로 동물적 반응도 무시하지 못할 안종현의 사진에서 앞서 언급한 정신병원 가림막 이미지는 즉물에 가깝게 여겨질 정도로, 일차적으로는 기이했고 따라서 이 작품이 관람의 파동을 요동치게 만들 만큼 문제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선택에 대한 재구성이 마치 숙제처럼 다가온다.
거리와 거리 간의 장소를 지표로 삼은 듯한 이 전시에서 DMZ, 주한미군기지, 정신병원의 역사와 기능에 대한 고발과 시사점을 파헤치는 게 작가가 관객에게 기대한 일정 수준의 관람이라고 가정한다면 당혹스러운 지점이 많다. 지뢰라고 적힌 표지물이 아니라면 〈멀리 가까이 중간_DMZ〉에서 DMZ는 소거되어도 될 만큼 장소 선택 그 자체가 전하는 정보는 거의 없다. 〈멀리 가까이 중간_DMZ #1〉은 4개의 패널로 매끈하게 봉합된 DMZ의 어느 곳이지만 풀숲 어디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전시에 대한 신현진의 글이 “피사체가 없다”를 강조하면서 예술의 불확정성에 대한 확신과 여기서 나아가 정동(affect)을 비평어로 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멀리 가까이 중간_U.S. army base〉도 주한미군기지의 실체로 쉽게 수렴되지 않는다. 〈멀리 가까이 중간_psychiatric hospital〉도 마찬가지다. 장소에 대한 정보값은 작품 제목으로 제시되지만 이 값의 효력은 화폐 가치나 도량형이 합의의 산물이듯 그곳을 그렇게 부르기로 한 약속과 결정을 언어로 전하는 데 준한다. 따라서 《당신으로부터 나의 거리》에서 거리감은 장소 좌표가 구성되어 있다는 점으로 인해 거리를 자의적으로 감안하게 만든다.
멀리 가까이 중간에 긋는 임의적 선분의 효력
사실 멀리 가까이 중간에 대한 감각은 대단히 상대적이다. 작가가 제시한 한국전쟁 시 월남한 부친에 대한 사연, 분단 현실과 관련한 미군 주둔의 현실, 미국이 지은 정신병원은 작품 구상과 제작의 발단에서는 개연성을 충분히 발휘하나 명시적 정보값에 비해 작품에서는 그 장소성이 쉽게 휘발된다. 그렇다면 《당신으로부터 나의 거리》는 장소성에 대한 심리적 접근으로 한정되는 것일까. 질문에 대한 단서를 작가가 제공하는 작업 노트에서 ‘가상’의 경계를 왕래했다는 서술에서의 ‘가상’과 “현실로부터 분리된 현실”이란 표명에서 ‘분리’로부터 찾아야 하는 것일까 고민해 보지만 작가의 힌트보다 관객 오답의 찬란함이 작가에게 더 낫겠다는 판단이 든다. 이번 전시 도록에 수록된 김진혁의 글에서는 안종현의 공간과 장소를 인류-지리학자의 용어를 빌려 공간은 물리적인 실체로, 장소는 공간에 집단적 경험과 개인의 실천이 적립된 실존적 공간으로 간주한다. 이 장소와 공간에 안종현이 스스로를 위치시키고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나는 여기서 작가의 위치보다 그 위치를 통해 긋게 되는 임의적 선분의 효력으로 관심을 선회한다. 가림막의 빗금 너머를 여는 〈psychiatric hospital-#01〉은 ‘멀리 가까이 중간’이라는 거리 설정에 물리적 선분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특수한 경우이다. 다른 작품들은 대체로 원경보다는 중경, 근경에 가까운 사진들이 경우에 따라 피사체를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도려내고 있더라도 한 점 혹은 작품의 수평, 수직 군집과 배치를 통해 선분의 임의적 효력을 발휘한다.
임의적 선분의 효력이란 말이 추상적이라면 대기나 빛, 정조가 발하는 효력으로 바꿔 말해 보겠다. 나는 글에 지문이 있듯 사진에서도 지문을 찾는데, 안종현의 사진에서는 빛을 그만의 지문으로 생각한다. 《통로》(2015)와 《풍경》(2017)에서 주로 발현되는 어두운 적갈색의 세피아톤은 〈멀리 가까이 중간〉에서도 틈틈이 드러나는데 안종현은 이를 필름 카메라로부터 디지털백 사용까지의 과정에서 갖춰진 취향이라고 부연한다. 그러나 내게 이 정조는 시시각각 변하는 사건이 된 풍경과 대상에 기민하게 운신한다기보다는 쐐기가 된 사진으로부터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야 할지조차 모를 일종의 무상함에 닿게 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피사체가 없다”는 해석보다 “피사체가 필요 없다”에 가까울 이런 해석은 안종현이 지닌 사진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확신에 비춰볼 때 역설적이기도 하다. 빛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러브》의 〈PART 1_망월동의 꽃〉(미발표작)에서 오래되어 색 바랜 조화만큼 눈에 띄는 건 조화 유리관에 뿌옇게 맺힌 습기이고 맑은 날조차 마냥 맑게 느껴지지 않는 〈멀리 가까이 중간〉의 대기의 밀도와 질감은 가까이, 지금 여기에서 돌연 멀리 돌아보게끔 하는 묘연한 힘이 있다. 이처럼 작가의 위치에서 비롯한 사진이라는 결과물과 그 결과물 안의 배치는 피사체에 시선을 머물게 하지 않고 묘한 기시감을 낳는다. 현실인데, 현실 같지 않은 사진과 현실 같지 않은데, 현실인 실제가 직조되며 만든 효력이면서도 만들었다는 능동태보다 인간의 손발이 닿지 않은 임의성으로 기울어진다.
인간의 노고보다 더 아득한 무상함에 있어서 나는 보르헤스의 「죽지 않는 사람들」의 짧은 몇 문장을 거듭 떠올린다. 그 장면은 혈거인들이 해질녘 구덩이나 우물에서 나와 석양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죽지 않는 사람들이 혈거인이고 이들은 삶의 모든 노고가 헛됨을 깨닫고선 생각에 몰두하는 이들이다. “벌써 내가 그 『오디세이』를 창조한 지 천백 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소”란 읊조림이 되려 더 음유시인 같은 혈거인의 시선이 석양녘 그 어디에 닿았을지 못내 궁금하곤 하다. 자극과 충격은 이내 시시해지고 마지못해 「죽지 않는 사람들」 마냥 보이는 것들 너머로 시선을 던지면서도 나는, 우리는 「죽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매일 무언가를 보고 느낀다. 그러나 본 것이라는 대상이나 보는 것이라는 행위보다 보지만 시선 던지기에 가까운 하릴없음이 DMZ, 주한미군기지, 정신병원과 같은 구체적 장소를 포착한 《당신으로부터 나의 거리》로부터 추동되었다. 장소는 장소 이상으로 징후나 증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의 타래가 엮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