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과일

2011. 9. 14. 12:25 from 카테고리 없음
성의 역사 2권과 양운덕 선생님께서 내신 문학과 철학의 향연을 구입하러 교보문고에 다녀왔다. 철학서 앞을 서성이는데 한 젊은이가 바닥에 앉아서 책 몇권을 꺼내서 중얼중얼 거리면서 끊임없이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놓여있는 책들은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등등. 처음에는 몰두해서 책 읽고 있나? 서가를 둘러보는 사람들 신경도 안쓸만큼? 싶었는데 아닌 것 같다. 약간 정신적으로 불편한 분인 듯. 칸트. 헤겔. 철학이 실상 정신줄이 튼튼해야 가능하지 싶기도 하다. 순수이성비판 이런 책 4시간 정도만 세미나 하고 있으면 머리 속이 몽롱해졌던 듯 하다. 역시 나는 철학 공부할 그릇은 아니였던......

의기소침해지는 나날들이다. 곽노현 교육감은 구속되고. 정국은 잡탕이 팔팔 끓기 전 70도 정도의 상태로 체감되고. 제도 정당에 대한 불신이야 난치병이다만 노동하는 자와 입장을 함께하는 후보자는 정녕 없는 것일까. 진보신당 내부의 통합신당 논의는 불발되고. 기실 이를 불발이라 할 사항이기나 한지. 이 논의가 이루어지던 지지난 주말-아니 술마시고 있던 어느 토요일, 늦은 밤 진보신당 당원인 선배가 생골뱅이집에 들어서며 이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전하며 니 들은 모르고 있었냐고 타박하는데 또 다른 선배와 나는 뜨뜨미지근하게만 굴었다. 트리에에서부터 함께 오신 하얀 맑스를 책상 위에 모셨지만 오리무중이다. 

짐바브웨 자유 해방 투쟁의 과정에서 젊은 남녀들은 무지바(mujiba)와 킴브위도(chimbwido) 같은 애매한 범주의 활동을 했는데 무지바는 남성의 활동으로 정부군과 내통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원이었고 킴브위도가 참 난감한 역할인데 심부름 소녀라는 뜻과 야생 과일이라는 뜻을 모두 갖고 있었다고 한다. 자유 투사들이 먹고 입을 것을 챙기면서 자유 투사들을 돌보았고, 또한 잠자리를 같이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임신하는 일도 종종 벌어졌다고. 자유 투사는 마을 사람들이 부대를 밀고 하지 못하도록 젊은 여성 모두에게 자신들과 잠자리를 함께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로버트 J.C. 영의 포스트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굴레라는 것이 아프게 다가온다. 반식민 시기 식민해방 투쟁에서 민족의 자유가 우선 실현되어야 한다고 이해했기에 유예 구조 안에서 독립 이후의 발전들은 종종 여성들에게는 배신으로 느껴졌다고 쓰고 있다.

때늦은 논의의 구태였지만 90년대 후반에도 여전히 여성운동은 부문운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얘기되던 그 시절이 새삼 오늘 참 부끄럽다.
Posted by diewinterrei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