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리 큐레이터의 여름 전시를 위해 청탁받은 글인데, 주리샘은 내게 1986만 던지고 상냥하게 믿어주었다. 그래서 나오게 된, 졸고랄까......
1986
1997년으로부터 1986년
나는 1997년 봄 대학 축제를 후각으로 기억한다. 하나는 물먹은 폐지에서 나는 눅진한 냄새이고 또 하나는 5월 봄 기온에 반응하기 시작한 시큰한 막걸리 냄새이다. 엎질러진 술병에서 새어나온 술이 잔디에 베이고 그 위로 사람이 뒹굴고 모자란 술을 찾아 늦은 밤이면 학교 밖으로 해갈을 나서는 축제의 시큰함은 알만한 이들이라면 익히 알게고, 바로 나머지 하나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폐지에서 나는 냄새도 꼬맹이 때 폐품수집이라는 명분으로 온갖 날짜 지난 신문지를 노끈으로 묶어 종아리 옆 살을 스쳐가며 학교에 낸 이들은 기억할거다. 조간 석간 구분 없이 창고에 쌓인 신문지는 주변 습기를 머금어 도착한 날보다 더 짙게 농후해져서 발효 음식마냥 쿰쿰해지곤 했다. 무엇보다 신문 잉크 냄새는 종이 박스나 포장지에서는 맡을 수 없는 특유의 미묘한 냄새를 증폭시켰는데 어른의 만년필 필기체 잉크 냄새와는 차원이 다른 공감각을 선사하곤 했다.
그해 봄 할 일이 많을 때와 할 일이 없을 때는 이분법마냥 나뉘었고 공부는 그다지 함수의 x값은 아니었다. 너 요즘 바쁘냐는 한참 선배의 물음에 아니라고 답했더니 할 일이 금방 생겼다. 나같은 몇 명이 대학원 도서관으로 모여들었고 할 일은 오래된 신문을 샅샅이 훑어나가기였다. 대학원 도서관 2층은 납본한 신문이 모여 있었고 신문이 뿜어내는 두터운 냄새는 그 층을 아래로 쑥 주저앉게 만들었는데 실제 도서관 2층은 입구를 통과해 반층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있기도 했다. 우리는 80년대 신문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해드라인에서 노동 문제와 관련한 구절을 뽑아 정리해 나갔다. <한겨레> 창간이 88년이었으니 그 이전까지 해드라인은 온통 한자투성이였고 마침 한글전용세대라 스스로를 칭하던 선배들이 한자 읽기를 포기하는 바람에 동기들의 몫은 많아졌다. 물론 한자를 점자마냥 더듬는 수준은 거기서 거기였다.
1997년 축제의 낮은 온통 도서관에서 보냈다. 다들 하루하루 파리해져갔다. 빛을 쬐지 못해서이기도 했고 술을 남들만큼 마시지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손으로 써내려간 한 줄씩의 목록만으로는 도무지 펼쳐지지 못할 80년대와 대면하기 힘들었던 점도 이유였다.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낯설었고, 86아시안 게임을 스크랩하고, 최루액에 매일 울며 하교했고, 88올림픽에서 체조 선수들의 몸놀림에 감탄했던 80년대가 십년이 흐른 후 덮어쓰기 되었다.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까지 고조되는 기사들에는 없는 것들이 가득했다. 특히 가파르게 솟구치던 1986년의 정황에는 있어야 할 것들이 없었다. 그 시공간의 삶에는 돈이 없고, 여가가 없고, 노조가 없거나 유명무실했고, 노조가 있어도 지지가 없고, 권리가 없고, 민주주의가 없고. 있는 것들이라면 탄압, 구속, 내몰림, 죽음이 형편없이 있었다.
나에게 1986년은 세상의 파고가 재구성되어 펼쳐졌다가 자비 없는 해드라인으로 응축되었던 해이다. 1985년이, 84년이, 87년이 그랬다. 전국노동자협의회, 줄여서 전노협 백서 색인 작업은 1997년 이렇게 준비되었다. 몇 해가 지난 후 백서 색인 작업에 참여한 학교 명단을 보며 눅진한 신문 잉크내를 맡은 이들이 우리만은 아니었고 미묘한 우울감의 연대가 옅게 전국에 산재했음을 확인했다.
1997년을 경유한 2019년으로부터 1986년
기획자에게 글을 청탁받는 날, 마침 그날은 준비했던 전시(세월호 참사 5주기 추념전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의 오프닝 날이었고, 대절한 차를 타고 전시장 중 한 곳을 나란히 앉아 가고 있었고, 예상치 못한 비가 쏟아졌고, 찾아준 성의에 답례하는 마음에 청탁에 응하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이 글이 홀로 미울까봐 덜컥 두려워졌다. 단적으로 언젠가 돼지에 대한 전시를 기획하고 싶어요, 얘기를 한 적 있는 기획자 특유의 색깔 있는 미감과 집요한 취향을 모르지 않고, 잭 블랙을 투과하여 조명하는 대중문화 연구 전시에서 홀로 건물 반 층 주저앉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못내 미련해서 거절은 못하고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이런.
뒤늦게 음악 플레이 어플리케이션에서 1986년을 검색해 보니 이문세, 이선희, 전영록, 김완선 조숙하게 따라 부르던 옛 스타들이 즐비했다. 마돈나, 라이오넬 리치, 휘트니 휴스턴, 무언가 <태양소년 에스테반>을 떠올리게 만드는 글로리아 에스테판이 목록에 뜬다. 자주 깔깔거렸고 두꺼운 아시안 게임 신문 스크랩북이 한때 자랑이었던 1986년은 또한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사고가 발생했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났으며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시작되었고 농심 신라면이 출시되었다. 우주를 품으려는 원대한 야망이, 반핵의 원년이, 알 수 없는 일상의 공포가, 아직도 매운 맛의 대명사가 세상에 나온 그 때. 부천에서는 성고문 사건이 벌어졌고 어린 나는 하와이로 망명한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부인 이멜다의 사치품 구두 삼천 켤레 이야기와 화보에 빠져들었다.
1985년의 주요 사건을 펼쳐보더라도 87년을 펼쳐보더라도 역사에 새겨진 사건은 별처럼 무수하고 어린 나는 앳되어 해맑기만 했다. 등재된 사건이 있고 추적해서 기어이 빛을 보게 만들어야했던 사건이 있는데 한편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미혹시키는 설탕 가루는 언제나 총총히 눈썹에 흩뿌려져 있곤 하다. 1997년 나는 노동을 중심어로 두고 지나간 날들을 복기했지만 중심어가 우주가 되던, 식문화가 되던, 음악이 되던 사건의 열은 배치를 달리할 뿐 다시 생과 사는 점액질이 되어 엉긴다. 그래서 우주가 되든, 식문화가 되든, 음악이 되든 선택에 따라 융기와 침강의 바라봄새가 다소 변할 뿐 그 해의 편물은 헤지는 게 아니라고 이제 믿는다.
이멜다의 구두에 탐닉했던 나는 이제 그 구두로부터 독재와 착취의 선분을 이으며 1987년 6월민주화항쟁의 결실이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에서는 끊어져 있음을 안다. 나에게는 잭 블랙이 연기자이지만 그가 “Tenacious D”의 멤버임을 알게 되었고 기획자가 내게 1986년을 주제로 던져준 것이 짐작컨대 잭 블랙의 연대기에 중요한 어느 시점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니어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잭 블랙이 중심어가 되어 구성될 <더 트리뷰트>에 내 기억이 융기가 될지 침강일지 알 수는 없으나 융기가 되든 침강이 되든 선택된 중심어를 두고 동심원을 그린다. 동심원이 집합이 되고 여기서 다시 교집과 합집과 여집과 공집을 더듬는다. 여기까지이니, 여기로부터 이제 다시 이어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