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21

2010. 9. 21. 12:36 from 카테고리 없음
제때 꺼내지 않은 빨래는 종종 잊고 싶어 잊는다.
며칠 그렇게 묵힌 빨래를 다시 돌리고 종료 소리에 맞춰 널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때 교실마다 쓰던 걸레들의 묵은 내처럼 시금털털한 냄새가 나는 듯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건 빤 것들이라고 무시하며 손놀림을 계속한다. 그 시절엔 걸레를 많이 빨았다. (순간 TV에서 어릴 때 부모님께 옷을 많이 사드리지 못했다며 눈물을 닦는 벌레를 보고선 반사적으로 지랄을 읖조리며 채널을 돌렸다. 걸레같은 놈)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많이 했다. 착한 척도 아니었는데 왜 꼭 그런 일은 나서서 해야한다고 생각했는지 그 웃자람이 의아할 때가 있다.
 
O의 집에서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버터 냄새에 정신을 차리고선 곁에 있던 정성일의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를 짚어 들어 읽었다. 현미밥같은 그의 글을 읽으며 나설 채비를 했다. 비는 부슬 거렸고 스타벅스에선 카페라떼 스몰잔을 주문해서 광화문 사거리에 섰다. 추석연휴 정상영업하는 교보문고 입구에서 개장시간에 맞춰 커피를 홀짝거리다가 정성일의 평론집을 것도 마분지만한 장정 패키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좋은 글을 꼭꼭 읽고 싶었다.

여름, 독일에서 머무르는 동안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들었다. 앞문에서는 지하, 뒷뜰에서는 1층인 T의 방은 앞문에서는 지하이기 때문에 조금 습하고 어두웠다. 오래 비워둔 큰 수족관이 있고 오렌지빛 낡은 쇼파가 있었다. 정은임의 영화음악을 습관처럼 틀어놓고 책을 읽고 있다가 '한 목소리'에 놀라 책을 놓았다. 그건 정성일씨의 목소리였다. 단호한 목소리, 그건 종교인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오래 듣기 피로하여 짧게 짧게 끊어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풍부한 내용은 쉽게 피로하게 만들고 글로만 접하던 그가 목소리로 다시 온 경험. 

하루하루가 아득해서 오후에, 저녁에 곰곰히 생각해 본다. 아직 어리석게 살아서인가.

  

Posted by diewinterrei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