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ring Stream

2014. 9. 7. 23:09 from 카테고리 없음
 "새벽에 소양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본 적 있어?"
 미래가 없다고 대꾸하자 아미는 저 혼자만 아는 비밀을 털어놓듯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거기에 춘천의 특산품이 있어."
 그것은 물안개였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그도 알지 못했다. 다리 한가운데, 다시 말해 강 한복판에 이른바 안개의 구역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한참을 강만 내려다보며 걷다가 문득 앞을 보았더니 시야가 이미 부예져 있었다. 무시무시한 안개였다. 제 손바닥을 눈앞에 대고 흔들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았다. 제가 방금 지나온 길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앞이나 뒤나 안개에 포위되어 있기는 매한가지인지라 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안개가 점점 짙어졌다. 그 정도가 최고조에 이르러 이제 더 이상은 짙어질 수 없으리라 판단하는 순간에조차 계속 짙어졌다. 그 대목을 묘사할 때 아미는 눈을 감았다. 안개 입자가 어찌나 촘촘한지 옷이 다 젖는 것 같았다고,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헤엄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고, 앞은 전혀 보이지 않고 사방에서 강물 냄새가 진동하는데, 이상하게 그 안에 갇혀 있는 것이 그렇게도 따뜻하고 포근할 수가 없었다고.
 "마치 고향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
 "고향?"
 "응, 여행지가 아니라 고향."
 아미는 덧붙였다. 여행은 본디 그곳에서 태어나야 했으나 어쩌다 보니 태어나지 못한 또 다른 고향을 찾아다니는 일이라는, 늘 믿고 싶었던 그 말을 춘천에서 비로소 믿게 되었다고. 그래서 춘천에 눌러앉게 되었다고 말이다. (김미월, 만 보 걷기, 문학과사회 , 105, 2014년 봄, pp. 239-240.)


당연히 가을호라 생각하며 통권 번호가 어떻게 되나 표지를 보았더니 봄호였네. 이성복 시인과 박준상 철학자의 대담을 읽기 위해 사 놓고는 딱 그 부분만 취했구나. 묵은 계간지이지만 새 책 같은 것도 괜찮네......소양강 다리가 궁금하고, 태어나야 했으나 어쩌다 보니 태어나지 못한 또 다른 고향은 어딜까 갸웃하게 된다.  
Posted by diewinterrei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