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진드기 얘기로 서두를 연다. 숲 속 나무 가지 끝에 달라붙어 있던 진드기는 나무 가지 밑에 짐승이 지나갈 때 떨어져 피를 빨아 먹는다. 그러나 그 행운은 늘 오는 것이 아니라서 진드기는 18년간 단식하며 기다릴 수도 있다고 한다. 환경세계(Umbelt) 개념을 제시한 자연과학자 윅스킬(Uexküll)은 바로 진드기의 이 18년간의 시간을 멈춘 시간으로 설명한다. 그는 진드기가 낙하하여 생활을 영위하는 순간부터 진드기의 시간은 다시 움직이며, 그런 점에서 시간이 주체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시간을 지배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공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생명을 가진 주체가 없다면 공간도 시간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한낱 진드기에서 성큼 사람, 그 중에서도 예술가의 환경세계로 넘어 오겠다면 비약처럼 들리겠지만 미물이라 여기는 것과 존엄의 대상이라 자부하는 것 사이에서 환경세계를 만들어 내야한다는 과제는 균등하게 부여된다. 이제부터 하는 얘기는 우리가 이 과제에 대처한 일종의 사례 연구 정도일지 모른다. 말하자면, 만들어 내야 할 환경세계를 모색하는 예술가들의 분투라고 할까. 비록 흩뿌린 피는 없지만 말이다.
서두가 잡히면, 그 다음은 조금 쉽다. 마감일에 초치기는 참 고질병이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힘내..라. 힘내..자.